관광명소 9경 연제 이야기

9경 연제 이야기

연제의 사람들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
물만골 이미지 연산시장 이미지 아시아드 상징가로 이미지 배산 주변전경 이미지 아시아드주경기장-주변-전경

골짜기에 숨은 자연부락, 물만골

물만골이라 불리는 금련산 자락 골짜기 입구에서 작은 마을이 시작된다. 좁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골짜기에 파묻힌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지역 원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이 정착한 곳인데 산의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 항상 저수지에 물이 차 있었다고 한다. 물이 많아서 물만골일까.
2000년대 강제퇴거에 맞서 주민들이 공동으로 지켜낸 마을이다. 가파른 언덕에서는 연제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련한 쌍미실업 편물 공장

연산동 산기슭에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야기가 숨어 있다. 1960년대 말 연산4동 배산 기슭에 쌍미실업(雙美實業)의 편물 스웨터 공장이 다닥다닥 지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연산4동 배산 앞 쌍미천로 위쪽 대진 그린타워 아파트와 그린조이 회사, 녹원 요양원까지 이어지는 기슭이었다.
양옥으로 지어진 2층 규모의 집은 숲과 어울려 마치 스위스 풍의 수공업 단지처럼 보였다. 워낙 기술이 좋아 이곳에서 만들어진 스웨터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수출 효자상품이 됐다. 몰려온 노동자들로 이 일대는 사람과 가게가 번창했고 미군부대 사람들이 단체로 와서 쇼핑을 즐길 정도로 유명한 단지가 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두 번이나 와서 성공모델로 칭찬하고 길을 닦도록 권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낭만과 성공의 뒤안길에는 고달픈 2교대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과 한도 서려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온갖 집안일과 동생들 뒷바라지에 고생한 우리네 누나들의 눈물이 쌍미천에 녹아 있다.
쌍미천은 복개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그 많은 공장식 가옥 또한 이제는 찾아 볼 수 없다. 1944년 창업한 섬유회사 쌍미실업은 1988년 1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였으나 1992년 부도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토곡, 토끼 떼와 산적의 소굴 그리고 연제경찰서

연산9동에서 망미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는 해 뜰 무렵이면 왕토끼를 앞세운 토끼가 무리를 지어 다녔다고 해서 톳고개, 토끼(兎)고개(谷)에서 한자의 음만 따와 토곡(土谷)으로 불렸다.
또한 이곳은 망바위가 있었던 곳이다. 동래시장에서 수영으로 가는 보부상을 노리던 산적들이 망을 보며 출몰하던 자리에 옛날 포도청 격인 연제경찰서가 들어섰다.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는 향토의 역사라 할 것이다.

전통시장-연산시장

물만골역에 내리면 큰길을 사이에 두고 연산시장이 나온다. 오래된 전통시장으로서 주택가가 많은 연산동을 지키는 정겨운 시장이다. 오래된 시장 풍경과 왁자한 분위기가 살아 있다.

그 외 연제구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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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시장 외 연제구의 전통시장을 상세히 나타낸 표입니다.
연번시장명성명소재지지도전화번호
1 거제시장 권종갑 거제시장로 14번길 28(거제3동) 지도보기 852-6133
2 영남종합시장 김인겸 중앙대로 1030-1(연산2동) 지도보기 852-0049
3 거성시장 김재홍 아시아드대로 56(거제2동) 지도보기 -
4 연일시장 공석 고분로 24(연산4동) 지도보기 -
5 연천시장 정봉주 과정로 276번길 22(연산8동) 지도보기 851-3398
6 연동시장 강재천 연동로 8번길 14(연산1동) 지도보기 862-8364
7 연미새시장 박종욱 배산로 23번길 3(연산6동) 지도보기 861-6298
8 연산시장 상인회 없음 월드컵대로 3번길 24(연산2동) 지도보기 -
9 연산로타리 종합시장 상인회 없음 월드컵대로 111번길 6-16(연산5동) 지도보기 853-7201
10 연일골목시장 상점가 이화수 고분로 24 일원(연산4동) 지도보기 862-8364
11 연산1동 골목상점가 강재천 연동로 8번길 14 일원(연산1동) 지도보기 862-8364
12 연산골목시장 상점가 신영철 월드컵대로 19번길 일원(연산2동) 지도보기 868-1566

임을 향한 그리움, 정서의 정과정곡

정씨 정, 오이 과, 정자 정의 정과정(鄭瓜亭)은 과거 연제구에 위치해 있다가 지금은 자리를 수영구 쪽으로 옮긴 정자의 이름이다. 정과정곡(鄭瓜亭曲)이라는 유명한 고려가요와 이름이 연관이 깊다.
정과정곡은 고려 의종(1146~1170) 때 동래 정씨인 정서(鄭敍)가 쓴 향가계 고려가요이다. 고려 가요 작품 중 작가가 밝혀진 유일한 작품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향인 동래로 유배 온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유배 문학 작품이다. 10구체 형식이며, 《악학궤범》에 실려 전한다.
정서는 동래 정씨 시조 정문도의 증손자이며 호는 과정이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며 인종의 장인 임원후의 사위이기도 했다. 인종과는 동서 간이다. 의종 5년까지 순탄하게 살고 인종의 총애를 받은 신하로 풍류와 재기가 뛰어났다고 한다.
이후 의종과 사이가 좋지 않은 대령후 경을 추대하고자 한다는 모함에 걸려 들고 외척이라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36세 때 귀양가게 되었다. 그때 의종의 말이 오래지않아 곧 부르겠다고 했는데도 오랫동안 아무 기별이 없자 이를 슬퍼하여 정과정곡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19년간 유배 중에 임금을 그리며 강가에서 정자를 짓고 시를 읊었다.

정과정곡(鄭瓜亭曲)

내님을 그리사와 우니나니 (내 그대를 그리워 우니)
山 접동새 난 비슷하요이다. (산 접동새와 난 비슷하구나)
아니시며 거츠르신 줄 아으 (억울하며 거짓인 것을 아으)
殘月曉星이 아리시리이다. (잔월효성이 아시니)
넉시라도 님은 한대 녀져라 아으 (넋이라도 그대는 함께 있으나 아으)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 (벼르시던 이 누구인가)
과도 허물도 천만 없소이다. (과도 허물도 천만 없소이다)
말힛마리신뎌 (말들이 많아지니)
살읏븐뎌 아흐 (살얼음판 같구나 아으)
니미 나랄 하마 니자시니잇가 (그대여 나를 벌써 잊으려고 하시는구려)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그대여 다시 돌이켜 사랑해주세요)

이 노래의 내용은 자기의 외로운 신세를 산접동새에 비기어 임금을 그리는 절절한 심정을 읊었으므로 '충신이 임금을 그리는 노래(忠臣戀主之詞)'라 하여 궁중음악으로 불렸다.
정과정에서 수많은 시인이 시를 읊었다. 연산1치안센터에서 망미역까지 3.6km구간을 '과정로'로 지은 것도 정과정과 인연이 깊은 것이다.

아름다운 길, 아시아드 상징가로

2002년 아시안게임과 월드컵의 추억이 숨어 있는 아시아드 상징가로는 우리나라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2부산아시아경기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명소화시키고, 부산의 자연·인문적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도시철도 거제역인근 근린공원을 중심으로 열린 마당을조성하였다.
전체적인 가로 시설물과 포장은 닻, 돛대,항구 등 부산을 상징하는 디자인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색상도 파란색과 흰색을사용해 해양도시 부산의 이미지를 반영하였다. 아시아드 상징가로의 연산교차로방면에는 한우와 오리, 대게요리점 등 다양한 맛집의 향연이 펼쳐진다.